Egloos | Log-in


타인의 독서감상문에 대한 독서감상문-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나는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을 모른다. 부끄럽지만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아서 신문을 읽어도 정치면은 일단 훌훌 넘겨버리고, 그나마도 이젠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신문이 싫어서가 아니라 읽을 만한 신문이 없어서 벌써 1년이 넘도록 신문 하나 잡지 하나 받지 않고 있다) 아무튼 그러다보니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매우 빈약한 프로필과 근거를 알 수 없는 이미지 정도. 더구나 그의 글을 읽어본 적도 별로 없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냈다는 건 알았지만 그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러니 그가 자처하는 '지식소매상'으로서의 유시민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인 <청춘의 독서>를 읽으면서 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이는 그가 젊을 때 읽고 감명받았던 책들을 다시 읽고 쓴 감상문이다. 그 중엔 소설도 있고 이론서도 있고 역사서도 있다. 19세기 러시아 소설이 세 권인데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사마천의 <사기>, 심지어는<인구론>이니 <유한계급론>이니 <진보와 빈곤> 같은 연구서까지 섞여있으니 그가 지나온 행보와 시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바이다. 그러나 독서목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책들이 왜 젊은 시절의 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는가일 것이다.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일까,'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까,' '슬픔도 힘이 될까,' ;우리는 왜 부자가되려 하는가,'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역사의 진보를믿어도 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질문들을 되도록 피하고 안주하기 마련이거니와, 심지어 이런 거대담론적 주제들은 유행도 지나버렸건만, 글쟁이 유시민은 이런 질문들을 평생토록, 그리고 지금까지도 고집스럽게 되묻고 있다. 이 독서감상문들이 감동적인건 그가 읽은 책들이 고전이기 때문이 아니라 19세기의 러시아 소설, 2000년 전의 맹자님 말씀에서도 지금 이 곳에 살아가는 자신의 현실과 공명하는 바를 집요하게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이 독서목록 자체만으로도 왜 이런 질문들이 아직도 유효한지 정치인으로써의 유시민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글쟁이로서의 그의 능력은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쉽고, 간결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다.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 지식의 차원을 넘어 개인적 경험과 가치관까지도 던져 진지하게 대면한다. 그리고 젠체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글쟁이는 이처럼 쉽게 쓰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다. 쉽게 읽히는 글이지만 이렇게 쓰기 참 쉽지않음을 읽을수록 깨닫는다. 자신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불확실할수록 현학적 단어로 치장하고 과도하게 대가들을 인용하며 에둘러 말한다고, 나는 믿는다. 독서감상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논문도 학술서도 이렇게 써야한다고 믿는데, 불행히도 그게 그리 쉽지많은 않다. 게다가 이러한 글이 늘 환영받는 것도 아니다.개인적 경험을 통해 서술하면 자기도취적이고 사변적이라 비판받기 일쑤이고, 평이한 문장으로 쉽게 풀어쓰면 논문의 깊이가 없다고 무시받기 일쑤이다. 글의 논리적 견고함과 유효함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고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미국보다 한국에서 그런 보수성이 더 컸다. 논문이라는 것을 모르면서 석사논문을 쓰던 시절부터 지금껏 살펴보아도 '본 연구자'라는 대신 '나(I)'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금기인 반면, "무용은 가장 오래된 예술이다"거나 "무용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다"라는 등의 밑도 끝도 없는 명제는 무수한 논문들 사이를 끊임없이 떠돌면서 근거없는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불행히도 이는 석사 논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위와 풀로 쓴, 아니 복사와 붙여넣기로 쓴 책 한 편 보다 진솔하고 강력한 문장 하나를 만들어내는게 더 좋지 아니한가. 이상 좋은 책을 읽었을 때의 떨림을 전하는 타인의 독서감상문을 읽으며 나까지도 가슴벅찼다는 독서감상문이었다.




by okidoki | 2009/11/03 08:27 | nourish | 트랙백 | 덧글(4)

미셸 공드리의 성별

서울국제 가족영화제 상영작 중 미셸 공드리의 <마음의 가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러갔다. 공드리가 교사였던 숙모의 인생에 대해 찍은 다큐인데, 소개문구가 암시하는 바와는 달리 대단한 비밀이나 상처가 있다기보다는 나름 평탄하게 보이는 삶에 내재된 수많은 질곡들을 잔잔하게 회고하는 작품이다. 특별히 선하지도, 언제나 올바르지도 않은 평범한 인간이 겪은 인생의 고비고비들. 그런 숙모에게 "마음의 가시"로 남은게 있다면 동성애자이자 심약한 아들과의 애증관계. 인터뷰 위주의 영상과 몇 십년 전에 촬영된 8미리 필름 영상이 한데 섞이면서 묘한 노스탤지어의 감정을 일으킨다. 그런거 있잖아, 이제는 주름이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30년 전 어느날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는데, 갑자기 8미리 필름에서 젊고 팽팽한 그녀가 활짝 웃으면서 에이프런을 두르고 나타나는....

그런데 공드리 집안의 오래된 영상중에서 꼬마 공드리의 삼형제를 보여주는데, 어라, 남자애가 아닌가? 아차,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잖아! 불어권 이름은 발음이 같아도 뒤에 어미가 붙느냐의 여부에 따라 성별이 달라진다는 점을 깜빡했다. Michel이 남자라면, Michelle이 여자인 셈. 그러고 보니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를 인용한게 수백번은 되겠구만, 이상하게도 공드리씨는 성이 귀여워서 그런지 아님 그의 작품들이 귀여워서 그런지 아무런 의심도 없이 여자라고만 생각했다. 미셸 공드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내게 딱히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멀쩡한 중년남성을 오드리 또뚜같은 통통거리는 여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은 조금 당황스럽다.

그러고 보니 다른 일화도 생각난다. 영국 무용인류학자 중에 안드레 그라우(Andree Grau: 첫번째 e 위에 악상부호 있음)라는 사람이 있다. 문화에 대한 날카로운 글들이 매우 통렬하면서도 정곡을 찔러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Andre가 남자이름이라면, Andree는 여자이름인데, 단지 이름이 주는 어감때문인지 아님 안드레 레빈손(Andre Levinson)이라는 유명 무용평론가의 잔영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남자로 착각하고 있는 여성학자이다. 나는 다행이 어느 학회에서 이 사람의 발표를 보게되어 짧은 커트머리에 풍채좋은 여성임을 알게 되었지만, 그때 발표에선가 사람들이 자신을 자꾸 "he"라고 인용한다는 말을 지나가면서 했던게 생각난다. 그러고 보면 단지 "이름 석자"로 알고있던 학자들이 실은 밥도 먹고 수다도 떨고 자신만의 취향과 버릇이 있는 하나의 인간임을 깨닫는 것도 학회참가의 큰 소득 중 하나이다.

이름을 보고 성별을 구분 내지는 짐작할 수 있는 서양이름은 그렇다치고, 비서양이름을 인용할 때에는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디까지가 성이고 어디까지가 이름인지 헷갈릴 때가 많다. 내 이름도 영어로는 석자를 분리하여 표기하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성이고 이름인지 되물어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허긴, 자주 인용되는 학자들은 결혼을 여러번 하거나 성이 너무 길고 복잡해도 후대 학자들에게 뜻하지 않은 민폐가 된다. 무용학자인 Cynthia Novack이 사실은 Cynthia Bull 혹은 Cynthia Jean Cohen Bull과 동일인물임을 기억해야하며, "인류학자는 발레를 민족무용의 한 형태로 본다 (An Anthropologist Looks at Ballet as a Form of Ethnic Dance)"라는 논문으로 무용학에 있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가져온 학자인 조앤 키알리이노호모쿠(Joann Kealiinohomoku)는 그 길고 어려운 성 때문에 그녀를 언급하는 교수님들의 발음을 몇 십년 째 부끄럽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by okidoki | 2009/10/31 12:41 | nourish | 트랙백 | 덧글(1)

유니버설 아트센터 다이아몬드 갈라


팔은 안으로 굽기 때문일까, 발레단을 나온지 벌써 몇 년이 지나도 발레단 소식에는 관심을 가지고 기울이게 된다.
좀더 세련되고 탄탄한 발레단이 되길 바라는 맘으로 이런저런 생각도 해보고 신경을 쓰는걸 보면 진짜 친정집 같다고 하는 말이 맞나보다. 암튼, 오랫만에 어린이대공원까지 행차한 이유는 유니버설 아트센터가 객석보수를 마치고 재개관 기념 갈라공연을 했기 때문. 황금색과 붉은색으로 뒤덮힌 고풍스런 극장내부지만 객석간의 높낮이가 없던게 항상 걸림돌이었는데 이번에 완전 뜯어고쳤단다. 리셉션도 있었고 영상상영도 있었으나 나의 관심사는 물론 축하 갈라공연. 발레단의 공연을 본 지도 오래되어 요즘 신예무용수들은 누가 있나 볼겸 갔는데, 예전에 보았던 현대발레 작품인 <블랙 케이크>, <인더 미들> 외에도 이번에 놓친 <오네긴> "회한"의 파드되와 전에 놓친 오하드 나하린의 <마이너스7>을 보았다. 물론 거두절미하고 갑자기 "회한"의 파드되를 해야하는 혜민이와 재용이는 어색했겠지만, 이 부분은 작품 전체를 본 것과 다름없는 엑기스이기 때문에 꽤 성과가 짭짤한 방문이 되었다. <마이너스7>은 검은양복에 중절모를 쓴 남녀무용수들이 흐느적거리며 막춤을 추는 유쾌한 작품인데, 특히 마지막에 관객을 데리고 올라가 함께 춤추는 부분이 있어 오늘같이 특별한 날을 축하하는데엔 안성맞춤이었다. 무대로 끌려나온 관객들의 센스있는 반응으로 모두를 즐겁게 한 작품. 특히 주인공이된 아저씨는 이 극장 프로젝트에 후원을 톡톡히 하셔도 될 정도로 특별한 밤이 되었을 테다.

근데 말이다. 갈라 공연이 좋았던 만큼 아쉬운 점도 있었다. '갈라'라고 하길래 클래식 소품이 많을 줄 알았더니 의외로 거의 현대발레 작품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유일한 클래식인 돈키호테 파드되가 되려 뜬금없어 보일 지경. 문제는 그 파드되를 발레단 단원이 아닌 한예종 학생들이 했다는 것. 나름의 사정과 뒷얘기가 있겠지만, 갑자기 콩쿨장이 되버린 듯한 느낌. 제법 잘 돌고 잘 뛴다고 해도, 학생춤은 확연하게 학생춤이었다. 그들의 밋밋한 몸짓과 박제된 미소는 나머지 발레단 작품들에서 느껴지는 맛깔스런 여유와 겉도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차라리 클래식 대작위주의 일정에선 재능을 선보이기 힘든 신예무용수들에게 기회를 더 주었어도 좋았을 텐데. 게다가 낼모레 돈키호테 지방공연도 잡혀있는걸 보니 발레단의 캐스팅으로 했어도 충분했을 터이다.

한편 행사를 시작하는 단장님 인사말에선 흥미로운 얘기도 꽤 들었다. 발레단이 왜 어린이대공원에 있는가 했더니 비새는 누추한 연습실에서 있던 리틀엔젤스 무용단을 긍휼히 여기신 박정희 대통령이 대공원에 땅을 하사하시어 선화예중고가 탄생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연장 안팎의 벽과 천장을 가득채운 화려한 몰딩은 9개국 12명의 장인들이 와서 수작업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예전에 심청에 대한 자료조사할 때에도 느낀 바이지만, 유비씨의 역사는 한국현대사와 맞물려 매우 흥미롭고 드라마틱하니 좀더 적극적인 자료보존과 출판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0년 전에 지어진 극장이니 당시로선 얼마나 화려했던지 궁전이라고 불렸단다. 덕분에 최근까지도 연말 시상식이 가장 자주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번 갈라공연에서도 특별 행사라고 레드카펫이 깔리고 의전들까지 배치되었으니 얼떨결에 나도 레드카펫도 밟아본 밤이었다. 앞으로도 멋진 공연으로 채워지길.

by okidoki | 2009/10/28 06:35 | dance, dance, dance! | 트랙백 | 덧글(5)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