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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이룬 후

"김연아,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

스무살에 인생의 목표를 이뤘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김연아는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이룬후 기진맥진했다고 한다. 그래, 당분간은 올림픽 금메달보다 더 큰 목표를 세우기도 어렵거니와 오랫동안 그 목표에만 매달려왔으니 갑자기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도 당연할 듯 하다.  올림픽 금메달 같은 거창한 목표는 아니지만, 한국의 젊은이들 역시 스무살에 이러한 공황상태를 겪는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유치원, 아니 태어나서부터 훈련되고 교육받는 현실이다보니 막상 대학에 입학하면 공부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랬고 내 친구들도 그랬다.  외부적 조건, 눈에 보이는 확실한 목표가 아니라 자신의 내부의, 무조건적인 목표를 찾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헌데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들을 보면 또 그 내면의 목표를 위해 눈물겹게 노력해온 이들도 어찌나 많은지. 모두들 '거위의 꿈'을 부르며 내면의 목표마저 올림픽 금메달을 향해 달려가듯 죽어라 노력하는 것을 보면, 대단하긴 한데 뭔가 아쉽기도 하다. 내면의 목표 역시 엄청난 심적 압박으로 변해버린 것은 아닌지. 숨은 쉬고 사는건지. 

by okidoki | 2011/08/22 02:15 | 트랙백 | 덧글(0)

학교

오랫만에 학교에 들렀다. 6년이나 밤낮으로 드나들던 학교지만 이제는 갈때마다 낯설기만 하다. 간만에 맘먹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을 오르는 길은 아무런 장식 없이 순전히 기능적인 시멘트 계단이지만 커다란 나무 몇 그루에 뒤덮여서 좋아했던 곳이다. 때마침 녹음이 짙어서 마치 수목원 깊숙히 들어온 것 같다.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나무 몇 그루로 이렇게 환경이, 온도가, 햇살이, 공기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점심으로는 2000원짜리 스파게티를 먹었다. 케찹 맛이 강하긴 하지만 꽤 그럴싸하고 양도 넉넉하다. 십 오년 전에도 1500원 정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젠 명색이나마 피자치즈까지 한 스푼 올려주니 과연 이렇게 팔아도 되는 건지 걱정되었다. 식당 구석에 혼자 앉아 그릇에 고개를 쳐박고 뜨거운 면을 후후 불며 생각했다, 학교는 이런 공간이어야 한다고. 좀 촌스럽고 좀 느려도, 지친 마음이 눈치보지 않고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by okidoki | 2011/05/18 22:55 | dance, dance, dance! | 트랙백 | 덧글(0)

우연한 재회

어느 발레 애호가 블로그에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강효정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으로 데뷔한다는 기사를 보고 우연히 링크를 따라 들어갔다.  학부생때 유비씨 객원하던 시절에 서희와 강효정과 함께 객원무용수로 미국 순회공연 따라간 적이 있었는데 이 둘 다 이제는 세계적인 무용수가 되었으니 괜히 뿌듯한 맘에 찾아보았다. 효정이 얼굴을 볼 겸 무용수 소개 사진을 눌렀다가 왠지 아쉬워서 다른 솔리스트 아무나 눌렀는데, 아니 왠지 낯익은 얼굴이다. 이름을 보았더니 Myriam Simon.... 아, 그 미미구나!

결혼을 해서 성이 바뀌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1998년도에 중국의 광저우 발레단에서 함께 1년 동안 지냈던 캐나다 무용수였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백조의 호수>를 사랑하는 중국인지라, 여성 군무가 많이 필요하다보니 나를 비롯하여 캐나다 무용수 두명, 뉴질랜드 무용수  2명, 호주 무용수 1명이 1년 계약으로 오게 되었는데, 나도 학부생이었고 다른 애들도 만만치 않게 어리고 경험없던, 무용학교 갓 졸업한 풋내기들이었다.

나보다 한 달 정도 늦게 온 캐나다 무용수였던 미리엄 (미미)와 알렉시스는 너무나 쾌활하고 푼수떼기에다 뒤끝없고 대책없던 애들이었는데, 이렇게 슈튜트가르트에서 활약할 정도로 자기관리 철저한 무용수가 되다니!!! 그들이 도착한 날 밤 발레단 비서가 이들을 중국식당에 데려가서 (아마도 일부러) 닭발 요리를 시켜줬다가 울고불고 돌아가겠다고 난리를 쳤는데, 한 일주일만에 완전 적응해버렸다. 암튼 중국이 개방되기 전이었으니 여러모로 불편하고 힘든 생활이었지만 우리끼리 놀면서 그 스트레스를 풀었던 것 같다. 나도 처음으로 부모님과 떨어져서 혼자 살아보는 것이라 신이 났고, 이들도 말안통하는 낯선 문화에서의 삶을 수많은 "미친 짓"을 저지르며 지냈다. 한달 3000위안 이었던 월급을 받으면 클럽에 가거나 생일파티를 하면서 며칠 사이에 다써버리고 나머지 내내 쫄쫄 굶으며 발레단 매점에 외상달아 놓으며 지내던 달도 여러번이었다. 또한, 크리스마스날 아침에도 발레단 클라스가 있다며 투덜거리면서 산타모자를 쓰고 바워크를 했고, 주말에 갑자기 휴가가 주어져서 2박 3일 샹하리 번개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중국 도심에서 한참 떨어진 요양원 자리에 있던 발레단이라 할 일도, 갈 곳도 없어서 우리끼리 쓸데없는 토론하고 뒹굴면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특히 유독 게으르고 청소를 안했던 미미는 발디딜 틈 없는 난장판이 된 방에서 요가를 하면서 일부러 방귀를 배출하는 법을 시범보이기도 했다. 그때 내 룸메이트 였던 알렉시스는 지금도 캐나다 어디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면서 무용수로 지낸다고 하던데, 잘 있을까? 낙천적이고 명랑한 그녀 덕분에 우울에 잠겼던 나도 괜시리 맘이 풀어지곤 했었는데.  이메일 주소도 제대로 없던 그 때, 집에 전화하려면 오토바이를 얻어타고 장터에 나가 전화가게에서 전화해야 했던 그 때,  2005년이 되어서 파리에서 멋지게 재회하자고 했었는데, 지금은 다들 무엇을 하고 지내는지. 

by okidoki | 2011/04/10 23:57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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