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보니 5-6년 만에 제주도를 찾았다.
11월 말인데도 볕이 화창하고 공기가 어찌나 따스한지 오리털 파카가 거추장스러울 정도.
올레길이나 걸어볼까 하고 갔는데 실제로 걸은 거리는 정말 미약하나 그 맛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환상의 10코스는 모래사장을 가로질러 갯바위들을 뚫고 언덕을 올라가야하는 나름 난코스인데
그 와중에 바위 절벽으로 둘러싸인 Private Beach를 발견! ^^
아, 다음 여름엔 이곳에서 조용히 해수욕을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철이 철인지라 섬 전체가 귤나무로 탐스러웠다.
대규모 농장, 체험농장 말고도 골목골목 집집마다 몇 그루씩 심어놓은 귤나무에도 가지가 휘엉청하도록 귤꽃이 흐드러졌다. 바람을 피해서인지 골목 어귀 땅을 파서 심은 귤나무들.
가는 곳마다 풍광이 멋졌지만 그래도 별다른 기대없이 갔던 마라도가 의외로 매력적.
작고 아담한 이 화산섬에선 자애로운 듯해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같은게 느껴진다고나 할까.
지금이야 뱃편 가득이 도착하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곳이지만 그래도 그 옛날 그 험한 곳에서 살아가려고 기를 쓰던 삶의 투쟁이 언뜻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의 자연환경은 너무나 매력적인데도 불구하고 그 위에 새겨진 인간의 흔적들은 너무 요란하게 벅적대는 것이 유감스럽기만하다. 잠시 머물다가는 관광객들을 붙잡아야 하는 곳이고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에만 신경쓰며 살 수 없는 생활의 공간이겠지만 서울어느 먹자골목에서 마주칠 것 같은 거대한 원색간판들이 조용한 섬위에서 고래고래 악쓰고 있는 것 같아 씁쓸했다. 마라도에서 짜장면도 먹고 해산물도 먹고 다 좋은데, 좀더 자연과 어우러져서 멋스럽게 할순 없을까?
마라도로 가던 배에 있는 세면대. 노래방기계가 틀어져있고 오징어냄새와 맥주냄새로 진동하는 이 배에서 가장 낭만적인 공간. 우리 숙소는 중문에 있었는데 때마침 녹두장군이라는 블로거가 최근 제주도를 다녀온데다 심지어 중문 근처에서 머물렀기에 많은 도움을 받아 끼니를 해결했음. 한끼 빼놓고는 그가 추천한 집들을 다녔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부두식당! 실은 모슬포엔 뭐가 있나 해서 갔다가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부두임에 실망하여 차를 돌리던 중 발견한, 왠지 모를 포스가 느껴지는 식당이어서 서둘러 확인해보니 역시나 주인장이 직접잡은 생선을 판단다. 그리하여 계획을 급수정하여 다음날 여기서 아침을 먹고 마라도를 가기로 했다. 회를 먹어야 제대로겠지만 아침일찍이라 갈치조림과 성게국을 시켰는데, 갈치조림도 부드럽고 괜찮았지만 성게국이 더욱 놀라웠다. 아니 이게 어디로 봐서 1인분 (6000원) 어치란 말인가!!! (세 명이 먹는거라 많이 주셨다곤 하지만..) 냉면 그릇 가득한 미역국 사이로 성게들이 빽빽이도 보인다. 엊그제 청담동 이탈리안 식당에서 2만5천원짜리 성게 파스타를 먹는데 성게는 고작 3-4 덩어리가 나왔는데 말이지... 사실 성게가 싱싱하면 별다른 양념 없어도 이렇게 맛있는 것을.
아무튼 갈치조림과 성게국을 배불리 먹고있는데 그때 마침 돌아온 주인장이 가게문 앞에 잡아온 생선을 쏟아부었다. 다금바리 한 마리와 다금바리 비슷하게 생긴 애들. 다금바리는 한 마리에 16만원 정도란다. 들리는 말로는 다금바리는 비싸서 못먹는게 아니라 진짜를 먹기가 힘들어서 못먹는다고 하던데 직접 잡아와 비교를 해주니 제대로 신뢰가 감. 일생에 한 번은 먹어봐야 한다며, 그러나 일단 먹어보면 다른 생선회를 먹기가 힘들다며, 온갖 풍월을 떠들면서 그날 저녁에 꼭 와서 먹으리라 다짐했건만 배가 너무 불러 패스...
인심도 좋고 상냥하던 아주머니와 주인 아저씨. 그 외에도
중문 해녀의 집의 전복죽과 모듬회(멍게, 해삼, 소라),
오르막가든(오겹살),
산방식당(밀면)을 갔다. 음식놓고 사진찍는게 귀찮아 모두 링크^^. 해녀의 집은 회가 좀 비싼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어르신들이 손수 바다에서 잡으신 것이라 생각하면 고맙고, 무엇보다도 죽에 든 전복이 튼실해서 맘에 들었다. 오르막가든은 제주도에서의 첫식사를 한 곳인데 알고보니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이었다는.. 고기를 구울 때 호일접시에 김치, 파절임, 콩나물을 섞어 익혀주는데 고기와 싸먹으면 맛이 독특함. 그리고 밀면은 좀 분식집스러운 맛이었지만 뭔가 탱탱한 면발이 재미있어 한 그릇 비우게 된다. 여기서 파는 고기국수는 그야말로 라면맛이었다는 점. 더도 덜도 말고...
암튼, 원래는 올레길을 걸어보고자 갔으나 이렇게 다음끼니를 먹기 위해 배를 꺼트리기 위해 걸을 수 밖에 없던 짧은 식도락여행은 끝이 났다.
p.s. 제주공항에서 기다리던 중 관광청에서 나온듯한 사람이 설문조사를 해달라고 해서, 왠만해선 귀찮은 것 안하는 내가 흔쾌히, 그리고 성심성의껏 마라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함. 속이 후련해진데다가 보답으로 감귤초콜릿도 얻으니 일석이조일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