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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시즌과 야구소설


세상에나, 내가 야구에 대해 포스팅 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정말이지 작년까지는 야구장에 따라간 적(내가 자발적으로 간 적은 없다)도 평생 5번 이하이며 (10살쯤 아빠 따라 부산사직구장에 간 것을 포함) 야구 경기의 룰도 발야구와 비슷하다는 것만 알지 잘 모르고 (지금도 잘은 모른다) 주말 티비를 틀면 언제나 비슷비슷한 장면이 서너시간 지속되는 것에 짜증나던 내가...
슬며시 야구팬이 되어가고 있다.

왜?

돌이켜보면 예전에 읽은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가 그 아주 희미한 시초가 아니었을까.
야구의 야,도 모르긴 했지만 그래도 책을 읽으면서 이게 뭔가 매력적인 운동이라는 느낌은 받았으니까.
그러나 본격적 시작은 아마도 작년의 WBC. 일본과의 묘한 신경전 속에서 하루하루 순간순간 달라지는 게임의 양상이나 분위기가 문득 재미있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급기야 이번 봄에는 이승엽 등판 요미우리 대 요코하마 경기를 도쿄돔에서 보게된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승짱을 보러 도쿄에 간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이날도 승짱은 그의 이름이 새겨진 수건을 흔드는 우리의 수줍은 응원에도 불구하고 맥없이 타석에서 물러났지만.

최근의 나의 상태는, 티비 켜는 것도 싫어하던 내가 꼬박 티비 앞에 앉아서, 혼자서도 1회부터 9회말까지 다 보아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암튼, 플레이오프 (내가 이런 단어의 뜻도 알게되다니!) 를 마지막 한 경기 남긴 오늘, 마침 다 읽은 책이 있었으니 바로 박상의 <이원식씨의 타격폼>.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실제로 작가가 야구를 좋아하고 야구를 한다고는 하지만, 뭐 본격적인 야구소설인지는 모르겠다. (참고로 단편집이다) 문장이라는 싸이트에 매주 소설이나 시 부분을 발췌하여 이메일로 보내주는 문학집배원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여기서 받아보고 왠지 맘에 들어 산 책이다. 괴물같은 작가 박민규가 괴물이라고 칭하는 작가라니, 어떤 사람일까. 그러고보니 박민규도 야구에 대해 썼는데, 이 사람도 야구에 대해, 야구에 빗댄 이야기를 하는구나..


<홈런왕B>라는 작품을 보면, 소제목들이 가관이다.
'야구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양파는 무엇인가
 다시, 야구란 무엇인가
 그러나 양파는 무엇인가
 아니 그럼 양파가 뭐라는 것인가
 그러면 야구는 대체 뭐라는 것인가
 그렇다면 야구와 양파는 도대체 뭐라는 것인가."

 그 내용은 더 가관이다.
"- 오, 양파냄새! 저리 꺼져요!"
 - 양파냄새가 난다고? 난 자장면을 먹었을 뿐인데?
 자장면이라면 춘장과 양파와 생강을 돼지고기와 함께 볶아 면에 부어놓고 춘장에 찍은 양파를 곁들여 먹는 음식을 말하는 것 아닌가
 ...

나는 치약냄새와 양파냄새가 섞인 냄새를 맡고 다시 버럭 화를 내려다가 감독님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 주루코치와 배터리코치에겐 화를 내지 말아야 한다. 주루코치는 달린다는 것의 허실을 깨달은 사람이고, 배터리 코치는 오직 공을 배합하는 데 인생을 바치느라 몸이 약하거든'
그리고 할머니가 했던 이야기도 떠올렸다.
' 네 아버진 달리기 선수였고 어머니는 배터리 공장에서 일했었단다." 

읽어보니 문장에서 은희경이 소개한 부분은 이 책중에서도 가장 노멀하고도 평범한 서술이었는데, 이 황당무계하고 이리저리 널뛰는 문체를 따라가다보면 뭔가 수줍게 자리잡은 열정같은게 느껴진다. 이는 작가의 블로그에서도 마찬가지. 그는 창작열이 고갈된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진지함을 살포시 숨겨놓고는 '니미뽕'과 '에피쿠로스식 타조 앞다리 수블라키'와 개다리춤에 대해 시치미 뚝 떼고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암튼 오랫만에 읽은 괴물같은 소설.

by okidoki | 2009/10/13 10:18 | nourish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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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ilna at 2009/10/16 13:41
와- 도쿄돔에서의 야구경기라니... ^^ 생각만해도 아름다운. ㅎㅎㅎ
저도 어렸을 땐 야구는 주말마다 아빠가 보는 TV속 불청객이었는데-
지금은 꽤나 즐길 수 있게 됐어요.

근데, 저 박상 이라는 작가는... 왠지 제가 일본만화 '멋지다 마사루'를 처음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에요.
Commented by 이하로 at 2009/10/26 12:30
필라델피아로 검색을 하고 들어와보니 참으로 맛깔스런 글들이 있었습니다.
좋은 글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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