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03일
타인의 독서감상문에 대한 독서감상문-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나는 정치인으로서의 유시민을 모른다. 부끄럽지만 현실정치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아서 신문을 읽어도 정치면은 일단 훌훌 넘겨버리고, 그나마도 이젠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 (덧붙이자면 신문이 싫어서가 아니라 읽을 만한 신문이 없어서 벌써 1년이 넘도록 신문 하나 잡지 하나 받지 않고 있다) 아무튼 그러다보니 내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은 매우 빈약한 프로필과 근거를 알 수 없는 이미지 정도. 더구나 그의 글을 읽어본 적도 별로 없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냈다는 건 알았지만 그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러니 그가 자처하는 '지식소매상'으로서의 유시민도 모른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인 <청춘의 독서>를 읽으면서 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이는 그가 젊을 때 읽고 감명받았던 책들을 다시 읽고 쓴 감상문이다. 그 중엔 소설도 있고 이론서도 있고 역사서도 있다. 19세기 러시아 소설이 세 권인데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사마천의 <사기>, 심지어는<인구론>이니 <유한계급론>이니 <진보와 빈곤> 같은 연구서까지 섞여있으니 그가 지나온 행보와 시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바이다. 그러나 독서목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책들이 왜 젊은 시절의 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는가일 것이다.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일까,'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까,' '슬픔도 힘이 될까,' ;우리는 왜 부자가되려 하는가,'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역사의 진보를믿어도 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질문들을 되도록 피하고 안주하기 마련이거니와, 심지어 이런 거대담론적 주제들은 유행도 지나버렸건만, 글쟁이 유시민은 이런 질문들을 평생토록, 그리고 지금까지도 고집스럽게 되묻고 있다. 이 독서감상문들이 감동적인건 그가 읽은 책들이 고전이기 때문이 아니라 19세기의 러시아 소설, 2000년 전의 맹자님 말씀에서도 지금 이 곳에 살아가는 자신의 현실과 공명하는 바를 집요하게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이 독서목록 자체만으로도 왜 이런 질문들이 아직도 유효한지 정치인으로써의 유시민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글쟁이로서의 그의 능력은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쉽고, 간결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다.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 지식의 차원을 넘어 개인적 경험과 가치관까지도 던져 진지하게 대면한다. 그리고 젠체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글쟁이는 이처럼 쉽게 쓰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다. 쉽게 읽히는 글이지만 이렇게 쓰기 참 쉽지않음을 읽을수록 깨닫는다. 자신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불확실할수록 현학적 단어로 치장하고 과도하게 대가들을 인용하며 에둘러 말한다고, 나는 믿는다. 독서감상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논문도 학술서도 이렇게 써야한다고 믿는데, 불행히도 그게 그리 쉽지많은 않다. 게다가 이러한 글이 늘 환영받는 것도 아니다.개인적 경험을 통해 서술하면 자기도취적이고 사변적이라 비판받기 일쑤이고, 평이한 문장으로 쉽게 풀어쓰면 논문의 깊이가 없다고 무시받기 일쑤이다. 글의 논리적 견고함과 유효함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고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미국보다 한국에서 그런 보수성이 더 컸다. 논문이라는 것을 모르면서 석사논문을 쓰던 시절부터 지금껏 살펴보아도 '본 연구자'라는 대신 '나(I)'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금기인 반면, "무용은 가장 오래된 예술이다"거나 "무용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다"라는 등의 밑도 끝도 없는 명제는 무수한 논문들 사이를 끊임없이 떠돌면서 근거없는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불행히도 이는 석사 논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위와 풀로 쓴, 아니 복사와 붙여넣기로 쓴 책 한 편 보다 진솔하고 강력한 문장 하나를 만들어내는게 더 좋지 아니한가. 이상 좋은 책을 읽었을 때의 떨림을 전하는 타인의 독서감상문을 읽으며 나까지도 가슴벅찼다는 독서감상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책인 <청춘의 독서>를 읽으면서 그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고 느꼈다. 이는 그가 젊을 때 읽고 감명받았던 책들을 다시 읽고 쓴 감상문이다. 그 중엔 소설도 있고 이론서도 있고 역사서도 있다. 19세기 러시아 소설이 세 권인데다,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이나 사마천의 <사기>, 심지어는<인구론>이니 <유한계급론>이니 <진보와 빈곤> 같은 연구서까지 섞여있으니 그가 지나온 행보와 시대적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바이다. 그러나 독서목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책들이 왜 젊은 시절의 그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왔는가일 것이다.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일까,' '인간은 이기적 존재일까,' '슬픔도 힘이 될까,' ;우리는 왜 부자가되려 하는가,'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 '역사의 진보를믿어도 될까,'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런 질문들을 되도록 피하고 안주하기 마련이거니와, 심지어 이런 거대담론적 주제들은 유행도 지나버렸건만, 글쟁이 유시민은 이런 질문들을 평생토록, 그리고 지금까지도 고집스럽게 되묻고 있다. 이 독서감상문들이 감동적인건 그가 읽은 책들이 고전이기 때문이 아니라 19세기의 러시아 소설, 2000년 전의 맹자님 말씀에서도 지금 이 곳에 살아가는 자신의 현실과 공명하는 바를 집요하게 찾아내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이 독서목록 자체만으로도 왜 이런 질문들이 아직도 유효한지 정치인으로써의 유시민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글쟁이로서의 그의 능력은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쉽고, 간결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하다.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 지식의 차원을 넘어 개인적 경험과 가치관까지도 던져 진지하게 대면한다. 그리고 젠체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글쟁이는 이처럼 쉽게 쓰고 쉽게 말하는 사람이다. 쉽게 읽히는 글이지만 이렇게 쓰기 참 쉽지않음을 읽을수록 깨닫는다. 자신이 진정 말하고자 하는 바가 불확실할수록 현학적 단어로 치장하고 과도하게 대가들을 인용하며 에둘러 말한다고, 나는 믿는다. 독서감상문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논문도 학술서도 이렇게 써야한다고 믿는데, 불행히도 그게 그리 쉽지많은 않다. 게다가 이러한 글이 늘 환영받는 것도 아니다.개인적 경험을 통해 서술하면 자기도취적이고 사변적이라 비판받기 일쑤이고, 평이한 문장으로 쉽게 풀어쓰면 논문의 깊이가 없다고 무시받기 일쑤이다. 글의 논리적 견고함과 유효함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고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미국보다 한국에서 그런 보수성이 더 컸다. 논문이라는 것을 모르면서 석사논문을 쓰던 시절부터 지금껏 살펴보아도 '본 연구자'라는 대신 '나(I)'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금기인 반면, "무용은 가장 오래된 예술이다"거나 "무용은 모든 예술의 어머니다"라는 등의 밑도 끝도 없는 명제는 무수한 논문들 사이를 끊임없이 떠돌면서 근거없는 권위를 부여하고 있다 (불행히도 이는 석사 논문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위와 풀로 쓴, 아니 복사와 붙여넣기로 쓴 책 한 편 보다 진솔하고 강력한 문장 하나를 만들어내는게 더 좋지 아니한가. 이상 좋은 책을 읽었을 때의 떨림을 전하는 타인의 독서감상문을 읽으며 나까지도 가슴벅찼다는 독서감상문이었다.
# by | 2009/11/03 08:27 | nourish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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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불어 선생님도 글은 쉽게 페부를 찌르는 정확한 단어로 간결하고 분명하게 쓰라고 말하지만... 그건 늘 그저 가르침일뿐... ^^ 현실에서는 왜 이렇게 어려운지...
'글을 잘 쓴다는 것'
정말이지... ㅠ.ㅠ
유시민.. 참 여러모로 존경스럽고 매력적인 분입니다.
알면 알수록 그렇죠.
청춘의 독서는 아직 구입안했는데, 사봐야겠네요.
독서감상문 잘 봤습니다.
그래서 우린 그 치장을 알면서도 적당한 치장에 젠체하는 웃음을 주고받는...
엊그제 제작발표회하며 또 느꼈어
그래서 사람냄새나는 사람들이 갈수록 좋은데
늘 그런 사람과 부대끼고만 살 순 없으니깐...
:)